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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심장에 가장 가까운 말

김용선 개인전 <했었었었다>

정희영 기획자

 

   우리는 모두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자신과 만나고 자신이 짓지도 않은 이름으로 불리며 삶을 시작한다. 지나간 모든 것은 언제나 추억의 대상이 될 수 있다지만, 선택권이 없었던 경험은 추억과 비극 사이에 존재한다. 김용선 작가의 개인전 <했었었었다>도 그 어딘가에 위치한 가족에 관한 것이다. 

  공간 1층 벽엔 작가가 형의 집을 방문하여 촬영한 사진이 걸려 있다. “형은 우리가 함께 살아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나는 우린 좀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이 문장을 실현하기 위해 무작정 형이 사는 호주 집에 머무른다. 호주에서 구매한 가정에서 흔히 쓰일 법한 액자들 속엔 형과 형수, 딸, 애완토끼 그리고 김용선 작가의 몽실몽실한 추억이 한가득 담겨있다. 

 호주에서 촬영한 사진들은 모두 구로동 연작에 포함되어 있는데, 구로동 연작은 돌아가신 아버지 집 현관문을 따고 들어가며 시작한 것이다. 1층 전시장 바닥에 놓인 <집으로 다시 들어가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영상에는 아버지 집 현관문을 끙끙대며 따고 들어가는 작가의 뒷모습이 보인다. 어설픈 솜씨로 17년 전 집에 들어간 것은 분명 그 집에 무엇이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리라. 설마, 그 오랜 물건들이 모두 남아있을까. 색이 바래고 먼지가 쌓인 물건들이 모두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바라보며, 작가는 다시 한 번 찬찬히 바라보고 기록한다. 모두가 떠나간 자리에 쌓아 올리는 빛바랜 레고처럼(<엄마가 사준 레고>). 

   더 이상 오롯하게 모인 ‘가족’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마주한 사물은 지나간 마음의 고통을 사실상 다시 한 번 겪는 일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마음은 작가의 사진집에도 등장한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이야기했던 세계의 종말이 오늘이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 세계는 망해버렸으니까.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집 밖에서 마주한 가족들은 너무 낯설어. 머리 위로, 높은 건물들 사이로 비행기가 유유히 미끄러져간다. 이 세상에 무슨 일이라도 있냐는 듯이.”(UFO 대소동, 43p)

작가는 선택해야 했다. 아주 쓴 진실과 아주 달콤한 거짓말이 놓여있다면, 무엇을 집어들지 말이다. 황홀하게 망각할지, 고통에 신음할지. 선택의 문턱에서 머뭇거리는 관객들에게 작가는 자신이 그동안 만지작거린 사진을 조심스레 내밀어본다. 지하 1층 계단 밑에 있는 <구로동 비행기들> 작업을 살펴보자. 이 작업은 작가가 비행기 사진을 100장 찍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놀이를 믿고 사진을 100장이나 찍었던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다. 작가는 동네에서 비행기를 촬영한 후에 날짜를 97년으로 바꿔 넣어 이 연작을 완성했다.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바람들은 순진했던 기억에 대한 달콤함과 차가움 혹은 황홀과 눈물로 결합해 있다. 

  작가에게 가족은 언제나 바깥에 의해 규정되고 호명되어 왔다. 하지만, 김용선에게 있어 가족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이고 실체가 아니라 속성이다. 전시 제목 ‘했었었었다’가 예견하듯 김용선의 가족은 과거에 세 번 발생한다. 첫 과거는 유년시절 김용선 작가가 경험한 가족이다. 두 번째 과거는 성년이 된 사진가가 카메라를 꼭 쥔 채 ‘가족’을 경험한 장소(구로동과 수원)에 방문해 촬영한 시점이다. 이때 촬영한 사진들은 세상이 규정한 가족의 자리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신의 심장 가장 깊은 곳에 침전해 있는 가족을 탐지하고 기억하며 남긴 기록들이다. 마지막 과거는 그 모든 ‘과거’와 ‘과거의 과거’를 흘러보낸 후에 최근에 정리한 글/사진집일 것이다. 했었었었다. 이 세 번의 과거로 인해 비로소 김용선의 정체성이 선명해진다. 

  이제 글을 맺을 때가 되었다. 고약하게 쓰여진 과거 사이로 스며든 기억만이 더 깊은 진실에 가닿는 법이다. 정정해야 한다. 김용선이 천착한 가족은 명사도 형용사도 실체도 속성도 아니다. 그에게 가족은 심장에 가장 가까운 말이다.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사진엔 가족에 관한 거의 모든 측면이 숨어 있다. 이 지순하고 부드럽고 아픈 고백을 마주했기에 이제 우리는 모두 각자의 가족으로 침잠할 기회를 마련한다. 그러니 나도 김용선과 동일하게 마무리 지어야겠다. “이 사진은 오랫동안 볼 수 있겠다. 그렇게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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