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뽑기
동네에 할 일 없는 아저씨들은 머리도 감지 않고 츄리닝 차림으로 나와 인형 뽑기 기계에 매달렸다.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인형은 가슴팍을 누르면 반야심경을 외던 스님 인형이었다. 아저씨들은 옆에 인형을 수북히 쌓아두고 스님인형을 뽑기 전까지 집에 가지 않았다. 동네 아이들은 그 옆에서 추임새를 넣어가며 집게의 위치를 봐주었다. 천 원짜리가 끊임없이 나오는 아저씨의 주머니는 마르지 않은 샘물 같았다. 늘어난 츄리닝 무르팍까지 모두 돈으로 채워진 건 아닐까. 아저씨가 스님 인형을 뽑았을 때 우리는 제 일인 냥 함께 기뻐해 주었다. IMF 때문에 회사는 줄줄이 도산을 하고 동네엔 수많은 가게가 새로 생겼다가 금세 사라졌다. 애나 어른이나 할 일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해 여름방학은 아주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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