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나는 필름을 찾으러 가지 않았다. 사진관 아저씨가 사진을 봤을 거란 생각에. 누굴 좋아하는 내 마음을 들켰을까 봐.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갈 때마다 나는 고개를 아주 푹 숙이고 있었다. 혹시나 사진관 아저씨가 날 알아볼까 봐. 소풍 가서 같이 찍자는 말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아름이가 보일 때마다 몰래 찍은 필름 두 롤은 그렇게 세상에서 없어졌다. 일회용카메라 파인더 너머로 보이는 아름이가 희미하다.
여태껏 이런 이야기를 드린 적이 없었습니다. 듣기 힘드실지 모르겠으나 아버지는 들으셔야 하고 저는 해야 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말고도 제 아버지가 될 뻔한 남자들이 몇 있었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그 이름을 나열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관계는 그 다음에 다시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중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