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시계가 아주 맛이 가버렸어요. 시간을 볼 일이 생겨 쳐다보면 숫자가 흐릿흐릿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시계 플래시 버튼을 한 번 누릅니다. 그럼 다시 선명하게 돌아와요. 이건 예삿일이라 사실 크게 신경 쓰진 않는데 가끔씩 내가 술을 많이 먹는 날이면 시계의 날짜가 1월 1일로 다시 돌아가요. 시계를 다시 맞추는 일이 아주 성질이 나서 한동안 시계를 차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담배를 피우면서 시계를 볼라 치면 빤빤한 손목이 아주 벽을 마주한 기분이에요. 이제는 좀 익숙해졌나 싶으면 손목시계가 1월 1일로 다시 돌아가는 것처럼 그날로 돌아갑니다. 시계가 아주 맛이 간 것처럼 나 역시 아주 맛이 가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