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빽빽이 자리 잡은 다세대 주택들 사이에서 우뚝 솟은 신축 빌라의 매끈한 외벽을 마주하고 있던 집은 낮에도 햇빛이 제대로 들지 않았다. 술이라도 한 잔하고 들어오는 날이면 벽을 더듬거리며 불을 켜야 했다. 문득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는 기분을 아느냐고.사실 그 말을 들었을 땐 좀 시큰둥했다. 아니, 속으로 박수를 쳤다. ‘드디어 아버지도 그 기분을 아시네요.’ 암흑을 뚫고 집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건 언제나 내 몫이었으니까. 나는 항상 기다리는 사람이었으니까. 아버지에게 내 유년시절을 따져 물으려다 가만히 웃음만 삼켰다. 그랬던 내가 아무도 없는 그 집에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을 땐 어딘가 생경한 마음이 들었다. 이건 그때 내 것이랑 좀 다른데. 아버지의 집은생각보다 더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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