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밤이면 한 잔 걸치러 나온 아저씨들은 친구의 아빠이기도 했고 아빠의 친구이기도 했다. 술에 취해 기분이 좋은 아저씨들은 나를 불러 세워 공부 열심히 하라고 천 원짜리 몇 장을 쥐여주거나 고기 몇 점을 먹여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나를 무릎에 앉혀 놓고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었다. 아버지는(여느 아버지들이 제 자식에게 바라듯) 대통령이 되길 원했다. 아버지 친구들은 내 이름이 대통령에 걸맞은 이름이라고 했다. 나는 대통령이 될 거라고 장래희망을 고기와 함께 오물거리며 공수표를 천 원 몇 장과 바꿨다. 그 바람을 뒤로하고 이젠 사진가가 되기로 했으니 그때 받았던 돈을 다시 돌려줘야 하나. 대통령 선거 개표가 있던 날 아버지는 밤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아다. 또 어디선가 술을 마시고 있을 테지. 대통령 당선 확정 발표가 나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또 김씨가 대통령이 됐다고 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같은 김씨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 봄, TV에선 유례없는 조기 대선을 앞다퉈 다뤘다. 사실 투표를 하지 않으려 했었다. 다들 세상을 바꾼다고 하지만 내 세상의 변화는 투표와 관계없는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제일 싫어하던 놈에게 투표했다. 내가 찍은 놈은 대통령 당선 확정 발표가 나자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럼 자기가 대통령이 될 거라 기대라도 했단 말이야? 대통령 당선 확정 발표가 난 지 한참 지났는데 아버지는 집에 돌아올 줄을 모른다. 또 어디선가 술이라도 마시고 있을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