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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9

누나들은 세탁소 아저씨와 종종 승강이를 벌였다. 나는 그저 깐깐한 누나들의 눈에 세탁물의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 줄 알았다. ‘이 누나들을 손님으로 대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일 거야.’ 나는 조용히 말을 삼켰다. 그러던 차에 골목길 반대편 초입에 사는 아저씨가 내 옷을 입고 가는 걸 봤다. 그 아저씨가 입은 옷은 회색 옥스퍼드 셔츠였는데 내가 하도 자주 입어서 팔꿈치가 바랬던 옷이었다. 도대체 어디로 간 지 몰라서 누나들의 옷장을 모두 뒤져도 찾지 못했던 걸 내게 라이터를 빌렸던 적이 있는 아저씨가 입고

있으니 기분이 영 묘했다. 셔츠 깃이나 소매까지 보풀이 일어나 다 헤진 옷을 가서 내 것이라 따질 수도 없고 나는 그냥 보고만 있었다. 나도 이 동네 사람이 다 됐다고 생각했다.

무제 #23

누나들은 하루 묶고 가는 손님들을 위해 속옷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손님 대부분은 업소에 다녀온 걸 자랑하느냐고 오히려 핀잔을 주었다고 했다. 그렇게 인기가 없어진 속옷은 내 몫이 됐다. 누나들이 준비한 팬티는 진한 녹색과 주황색 사각 트렁크 팬티였다. 나이대에 상관없이 누가 입어도, 누가 봐도 수상한 팬티였다. 나는 그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하도

무제 #22

타이머가 울려도 누나가 방에서 나오지 않으면 문 앞에 서서 누나의 이름을 낮은 목소리로 목에 힘을 주어 불러야 한다. 저번엔 평소처럼 누나라고 불렀다가 누나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손님들이 무서워하기나 하겠냐고. 나는 보통 처음 보는 사람들 대하는 자리에선 이때 연습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그래도 나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본

무제 #21

누나들은 종종 손님들이 두고 가는 물건들을 잘 가지고 있다가 보기에 괜찮아 보이는 물건들은 내게 갖다 주었다. 대부분 남성용 시계 같은 액세사리였다. 세상에 이렇게 낯선 물건들이 또 있을까. 누나들 앞에선 한두 번 착용해보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누나들 앞에서 버리기 미안해서 한동안 책상에 올려두었다가 책상 정리를 할 때 한꺼번에 내다 버렸다. 그중엔 꽤 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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