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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11

우리 집 이야기를 하면 나는 이곳의 내부자가 된다. 딱 그만큼이다. 우리 집은 내부자와 외부인으로 갈라놓아야만 설명이 가능한 곳. 수없이 입에 오르내리면서 닳을 대로 닳아버린 미지의 세계.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흘겨야만 확인할 수 있는 곳. 아니, 그러고 싶은 곳. 그렇게 두고 싶은 곳.

나는 이곳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비밀로 간직해야 한다. 나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비밀을 가슴 한편에 두고 혹여나 누가 알아 알아차릴까 매번 빙판길을 걷는 듯했다. 내가 가진 비밀은 무엇인가. 내게 비밀을 말해 준 자는 아무도 없었다.


무제 #23

누나들은 하루 묶고 가는 손님들을 위해 속옷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손님 대부분은 업소에 다녀온 걸 자랑하느냐고 오히려 핀잔을 주었다고 했다. 그렇게 인기가 없어진 속옷은 내 몫이 됐다. 누나들이 준비한 팬티는 진한 녹색과 주황색 사각 트렁크 팬티였다. 나이대에 상관없이 누가 입어도, 누가 봐도 수상한 팬티였다. 나는 그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하도

무제 #22

타이머가 울려도 누나가 방에서 나오지 않으면 문 앞에 서서 누나의 이름을 낮은 목소리로 목에 힘을 주어 불러야 한다. 저번엔 평소처럼 누나라고 불렀다가 누나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손님들이 무서워하기나 하겠냐고. 나는 보통 처음 보는 사람들 대하는 자리에선 이때 연습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그래도 나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본

무제 #21

누나들은 종종 손님들이 두고 가는 물건들을 잘 가지고 있다가 보기에 괜찮아 보이는 물건들은 내게 갖다 주었다. 대부분 남성용 시계 같은 액세사리였다. 세상에 이렇게 낯선 물건들이 또 있을까. 누나들 앞에선 한두 번 착용해보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누나들 앞에서 버리기 미안해서 한동안 책상에 올려두었다가 책상 정리를 할 때 한꺼번에 내다 버렸다. 그중엔 꽤 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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