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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13

누나들 심부름 때문에 잠시 수원역에 나갔다 오는 길에 사창가 길목에서 단체사진을 찎는 무리를 본 적

이 있다. 나는 궁금증이 생겨 사진 찍는 무리 옆에서 담배를 태우며 그들을 관찰했다. 무리는 내 또래로보이는 여성 서너 명과 남자 네댓 명, 중년 여성과 남성이 열명 남짓했다. 정장 바지에 흰 셔츠를 입은 중년 남성이 다른 사람들의 자리 배치를 시키곤 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저마다 몸통에 띠를 하나씩 두르고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청소년에게 술, 담배를 팔지 말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들은 사진 몇 장을 찍고사창가 골목으로 들어섰다.

‘여기서 술과 담배를 파는 건 아닌데.’

골목 안은 묘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이 골목으로 들어서자 낮 손님을 받기 위해 나와있던 누나들은 일제히 쌍욕을 퍼부었다. 나는 그 무리와 한데 섞이고 싶지 않아 거리를 좀 두고 걸었다. 그 무리가 걸었던 골목길은 그간 십 년 남짓 이 동네 살면서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그날따라 누가 땅바닥을 세게 누르고 있기라도 한 듯이 사창가의 미세한 경사가 가파르게 느껴져 멀미가 났다.

무제 #23

누나들은 하루 묶고 가는 손님들을 위해 속옷을 준비한 적이 있었다. 손님 대부분은 업소에 다녀온 걸 자랑하느냐고 오히려 핀잔을 주었다고 했다. 그렇게 인기가 없어진 속옷은 내 몫이 됐다. 누나들이 준비한 팬티는 진한 녹색과 주황색 사각 트렁크 팬티였다. 나이대에 상관없이 누가 입어도, 누가 봐도 수상한 팬티였다. 나는 그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하도

무제 #22

타이머가 울려도 누나가 방에서 나오지 않으면 문 앞에 서서 누나의 이름을 낮은 목소리로 목에 힘을 주어 불러야 한다. 저번엔 평소처럼 누나라고 불렀다가 누나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손님들이 무서워하기나 하겠냐고. 나는 보통 처음 보는 사람들 대하는 자리에선 이때 연습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그래도 나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본

무제 #21

누나들은 종종 손님들이 두고 가는 물건들을 잘 가지고 있다가 보기에 괜찮아 보이는 물건들은 내게 갖다 주었다. 대부분 남성용 시계 같은 액세사리였다. 세상에 이렇게 낯선 물건들이 또 있을까. 누나들 앞에선 한두 번 착용해보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누나들 앞에서 버리기 미안해서 한동안 책상에 올려두었다가 책상 정리를 할 때 한꺼번에 내다 버렸다. 그중엔 꽤 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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