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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수컷

전에도 이 아이를 본 적이 있다. 우리 동네 언덕 제일 꼭대기에서 조금 내려가다 보면 파란 대문의 다세대 주택이 있는데 그 집 이층에 사는 만석이네 아랫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사는 꼬맹이. 할머니는 종종 아이를 데리고 내게 동생이랑 같이 좀 놀아달라고 했었다. 만석이네 놀러 갔다가 학습지 선생님 오셨다고 만석이네 엄마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그 집 문 앞에 쓰레기봉투를 던져버린 날, 그 아이는 문 앞에서 멍하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집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만석이네 엄마가 찾아올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다행히 별다른 일이 없었고 다음날 만석이는 엄마가 너랑 놀지 말랬다고 말만 전하곤 휙 가버렸다. 사실 친구에게 그 말을 들은 건 그게 처음이 아니기도 했고 내가 한 일에 대한 결과로 수긍했기 때문에 별 생각하지 않았다. 만석이네 엄마가 우리 집으로 찾아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 놀지 말라는 건 일종의 낙인 같았다. ‘이 사람은 누구와 놀면 안되는 사람입니다.’ 그 사실이 불편한 것이다. 만석이와 민석이는 매일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싸우고 항상 사고를 쳤기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 만석이는 말이 어눌하고 셈이 느렸다. 만석이 동생 민석이는 그에 반해 빠릿빠릿한 놈이었지만 고집이 세고 자기밖에 몰랐다. 멍청한 놈이, 엄마가 놀지 말랬다고 와서 곧이곧대로 전하고 마는 만석이가 더 얄미웠다. 한번은 만석이가 바퀴벌레 약을 민석이 눈에 뿌려서 민석이가 눈을 잡고 방바닥을 구르며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걸 달래고 눈을 씻어준 걸 알면 아줌마가 나한테 그렇게 할 순 없을 텐데. 바보 같은 형제의 바보 같은 아줌마라고 생각했다. 만석이네 엄마의 판결을 전해 듣고 나는 민수를 생각했다. 민수와는 삼 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학원도 같이 다닌 적이 있었기 때문에 곧잘 함께 노는 친구였다. 반이 갈라지고 내가 학원을 무단으로 나가지 않는 바람에 쉽게 볼 일이 없어 한 동안 보았었는데 우연히 옆집으로 이사를 와서 다시 친해졌었다. 민수는 눈썹이 짙고 슬리퍼를 신고도 달리기를 꽤 잘했다. 민수를 동네에서 봤을 땐 오래전 전장을 함께 누비던 전우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우리는 여름 방학 내내 동네 구석구석을 훑으며 모험을 떠났다. 민수는 슬리퍼를 신고도 거친 공사장 바닥을 잘 헤쳐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민수는 머뭇거리며 엄마가 나와 놀지 말라고 했다는 걸 전했다. 민수네는 쓰레기봉투도 던지지 않았는데. 우리는 항상 어깨동무를 하고 다닐 정도로 친했다.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하지만 민수는 그래도 나와 계속 놀 거라고 이야기했었다. 그 뒤로 민수와 함께 놀았던 적이 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만석이네 엄마의 판결이 내려진 뒤, 나는 동네에 놀 사람이 없으면 그 파란 대문 집 앞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골목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가장 잘 보이기도 했고 만석이네를 향한 내 나름의 시위였다. 만석이가 사는 집은 총 삼층으로 된 다세대 주택이었는데 계단도 많고 건물 구석구석 집을 숨겨놓은 듯 건물 곳곳에 문이 아주 많았다. 2:8 가르마를 탄 아이는 그 집 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집에 살았다. 그 아이와 눈을 마주하는 것도 파란 대문 앞이었다. 멀뚱멀뚱 쳐다보는 눈동자에 내 모습이 보였다. 새하얀 피부에 말끔하게 탄 가르마, 다림질이 잘 된 유치원복까지 너무 깨끗했기 때문에 그 눈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어딘가 구겨져 보였다. 나는 아이의 가르마 위로 주먹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꿍. 아이의 백옥 같은 얼굴에 사정없이 금이 갔다. 아이는 얼굴에 숨겨놓은 주름을 모두 드러내놓고 소리도 못 내지를 정도로 울다가 할머니를 찾는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할머니의 인기척에 저 멀리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 뒤로 도망갔다. 아이의 울음소리와 할머니의 욕지거리를 마저 들은 뒤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혹여나 할머니가 찾아오진 않을까.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을 죽였다. 다행히 그 후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버지 바꿔치기

여태껏 이런 이야기를 드린 적이 없었습니다. 듣기 힘드실지 모르겠으나 아버지는 들으셔야 하고 저는 해야 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말고도 제 아버지가 될 뻔한 남자들이 몇 있었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그 이름을 나열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관계는 그 다음에 다시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도깨비말

기심요숑서선과솨 노솔려셔며션 베셀으슬 누술러서라사.

수수께끼

아침엔 둘이었다가 점심엔 넷이고 밤이면 여섯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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