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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어김없이 아버지 이야기가 나왔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살고 있는 구로동으로 흘러갔다. 구로동은 우리 가족, 네 명 모두가 처음으로 함께 살았던 곳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살았던 곳이다. 아버지가 죽고 난 뒤, 우리는 암묵적으로 아버지를 아주 지나가버린 무엇으로 치부해버렸고 각자 마음에 남은 어떤 공허함을 감지했지만 서로 내비추질 않았다. 우리는 더 이상 함께 있는 자리에서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가족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일은 납골당에 가서 전시된 아버지의 유골함을 올려다보는 행위처럼 의식적이고 낯선 것이었다. 우리에게 ‘가족’을 이야기하는 것은 내부를 향한 것이 아닌 어딘가에 걸려있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우린 거울을 잃어버렸다.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아버지만 남겨두고 형을  따라 구로동을 떠났던 날이었을까. 엄마를 따라 홍등가로 들어가 지내던 때였을까. 아버지는 엄마가 밉냐고 물었다. 엄마는 구로동에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와 엄마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내심 서로 어떻게 사나 궁금한 기색이 있었지만 나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여태껏 ‘누구의 말’에 따라 휘둘렸다. 가족을 위해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종종 그간 내가 하지 않은 일과 버리지 못한 물건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방식이든 한 번은 만나야 한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아버지만의 죽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우린 무얼 끌어안고 있는가. 아버지는 자신이 없을 땐 형이 아버지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야기했다. 형은 우리가 함께 살아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제 영영 구로동에 갈 일이 없을 것이다. 아버지가 살던 집에서 형이 사는 집으로 가서 살았다. 함께 지내는 동안 우린 몇 번을 다퉜지만 그것 조차도 함께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니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싸워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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