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13
누나들 심부름 때문에 잠시 수원역에 나갔다 오는 길에 사창가 길목에서 단체사진을 찎는 무리를 본 적 이 있다. 나는 궁금증이 생겨 사진 찍는 무리 옆에서 담배를 태우며 그들을 관찰했다. 무리는 내 또래로보이는 여성 서너 명과 남자 네댓 명, 중년...
무제 #12
이곳을 떠날 때가 오면, 그때는 엄마를 업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싶었다. 그 당시엔 어서 그때가 오기를 바랐지만 막상 떠날 때가 되니 세상 밖으로 나가기가 두려웠다. 이곳을 처음 들어왔을 때와 나갈 때, 그리고 이미 나온 지금까지도 나는 그때...
무제 #11
우리 집 이야기를 하면 나는 이곳의 내부자가 된다. 딱 그만큼이다. 우리 집은 내부자와 외부인으로 갈라놓아야만 설명이 가능한 곳. 수없이 입에 오르내리면서 닳을 대로 닳아버린 미지의 세계.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흘겨야만 확인할 수 있는 곳....
무제 #10
가끔 혼자서 가게를 봐야 할 때가 있었다. 사무실 방에 누워 TV만 보기 답답해서 나는 주로 주방에 앉아 글을 쓰거나 달력에 쓰여있는 일정을 보며 시간을 때웠다. 벽지에 쓰인 메모를 보는 것도 꽤 재밌는 일 중 하나였다.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무제 #9
누나들은 세탁소 아저씨와 종종 승강이를 벌였다. 나는 그저 깐깐한 누나들의 눈에 세탁물의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 줄 알았다. ‘이 누나들을 손님으로 대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일 거야.’ 나는 조용히 말을 삼켰다. 그러던 차에 골목길 반대편...